일상 이야기

[스크랩] 이 가을이 가기전에

초의거사 2013. 4. 1. 10:00

 

 

 

어젯 밤

유난히 맑고 좋은 날로 이어지는 올 가을 정취를 안주삼아

거나하게 취해 집에 왔다.

딩동! 하면 안에서 현관문을 열어주어야 들어가던 시절과 달리

세월이 좋아 안에 있는 사람 신경 쓰지 않아도

버튼 몇번이면 문이 열리는 세상이다

잦은  취객들에게는 상당히 고마운 일이다

들어오니 예상과 달리 너무 조용하다

어미의 출장 관계로 집에는 우리 내외를 정신없는 팔불출로 만들어 놓은

외손녀가 와있었다

그놈 재롱 볼 생각으로 덜? 마시고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

아! TV는 혼자서 떠들고 있었고 우리 마늘님은

그 예쁜놈 한테 한쪽 팔을 내어 주고 정신없이 잠들어 있다

늘 그랬듯이 잠든 그놈한테 술냄새나는 입술을 쭉 한번 내밀고

나서

불현듯 잠든 마눌님의 얼굴에 시선이 꽂힌다

참 ! 세월이 많이 흘렀나 보다

살짝 코골며 잠든 모습이 영락 없는 할머니 얼굴이다.

얼굴을 바라보며 한때 꽃같았던 때를 떠올려 본다

도무지 떠오르질 않는다

물러 앉아 눈을 감고 회상해 본다

술기운에 감성이 더해진 때문일까

그 꽃같았던 날들이 마음을 달구며 떠오른다

눈을 뜨고 그 얼굴을 바라보니

 아침햇살에 흩어지는 안개 처럼 사라져 버린다

마음이 짠~ 해진다

 

철없던 시절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의 용기?를 부러워 하며

밝은 빛 뒤에 숨어 앓음 앓음 하며 보낼때도 있었다.

그런때

나에게도 사랑이 찾아왔고

사랑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으며 살아왔지만

그 사랑에 보답은 커녕

영원할 것 같았던 민생고와 영원할 것 같았던 갈등만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안겨줬었다

이제 덧 없이 흘러버린 세월 앞에 초라하게 변해버린 모습이

한없이 가여워 보인다

나름대로 잘 장성해 믿어도 될 만큼 제 역활 충분히 해내는

두 자식과

바라만 보고 있어도 한없는 행복을 안겨 주는 손녀까지

내가 받은 것들은 분에 넘치는데

오늘도 나는 베짱이

마눌님은 개미다.

생각사로 고맙고 미안하고

생각사로 감사하고 죄스럽다.

 

이 고맙고 사랑스러운

두 여인의 단잠을 깨울까

조심스레 이불을 당겨 덥어주고

조용히 어두운 천장을 응시하며 눕는다

주책없이 의도하지 않은 뜨거운 액체가

양볼을 타고 흐른다.

이런 시도 때도 없이 발동되는 주책은

분명 나이 탓 일게다

 

이 가을 단풍이 다 지기 전에

물 맑고 바람좋은 산천 찾아

나들이 한번 해야 겠다

달도 보고 별도 보며

삼겹살에 소주 한잔 나눌 수 있는 곳찾아

----

 

첨부파일 (신곡)나훈아 - 천생연분.mp3

 

 

출처 : 왕솔나무
글쓴이 : 초막거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