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선에서 대전차 장애물 공사 현장으로
전우회에서 5월 마지막 주 말에 을지 부대 방문행사를 갖는다는 공지가 떳습니다.
회장님 뒤를 이어 제가 2등으로 참여 신청을 했지요.
벌써 부터 마음이 설렘니다.
집결지가 서화대대라지요? 그때는 지명을 딴 대대가 없었던것 같은데--
아마 짐작 컨데 제가 처음으로 자대 배치를 받은 그때 그부대(51연대 1대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욕심 같아서는 야간 행군으로 GOP에 투입되던 그때 그길을 따라 올라가보고 싶은데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여간 궁금한게 아니랍니다.
글 번호 254호에서 이어집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견디지 못할것 같은 추위도, 전신을 휘감던 긴장감도, 칠흑같은 어둠도, 어깨를 짖무르게 하던 화목 여행?도 점점 무디어갑니다.
다람쥐 체 바퀴 돌듯 야간에 근무서고, 한나절 취침, 한나절 화목 여행,
자리를 잡아가니 그냥 평온한? 생활이 이어집니다.
가끔 타 부대에서 전입온 병사들의, 후방 예비부대들의 1년내내 훈련만 하는 생활에 비하면 이곳 생활이 낫다는 말을 위로 삼아 그냥 하루 하루를 살아갑니다.
변함없는 평온한 삶에는 자칫 나태가 자리잡기 쉽습니다.
상급 부대에서 그런 상황이 오도록 그냥 방치 할리 없습니다,
끊임없는 질책과 긴장감을 조성 하여 내려 보냅니다.
그 대표적인것이 을지순찰봉 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직경 1인치 정도 길이 30cm 정도의 철봉이었습니다.
그것에 번호를 새겨 야간 근무 투입과 동시에 돌리기 시작 합니다.
30분?마다 하나씩 돌아오는데 마치 운동장에서 계주 할때 바톤 터치 하듯 분초(분대초소)로 분초로 이어 달리기 시작 합니다.
분초장은 순찰봉을 받으면 소대 상황병에게 보고 하고 소대는 중대에 중대는 연대에 연대는 사단에. 보고가 이어집니다. 사단에서는 가만히 앉아 순찰봉 도는 모습을 보고 있지요.
순찰봉이 어느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즉각 채찍이 날라 옵니다.
초소와 초소 중간에 근무병이 접선? 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상대 근무병이 순찰봉을 가지고 왔는데 상대편 근무병이 와있지 않으면 기다리거나 골탕을 먹이려 그냥 놓고 가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시간이 지체 됩니다.
그런데 우리 근무할때 연대장님께서 자상? 하시게도 그 사이에 연대 순찰봉을 하나 더 끼워 넣었습니다.
2인 1조의 순찰 규칙도 어느 땐가는 실종되고 순찰봉은 오로지 졸병 몫으로만 남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알에 요령 소리 나도록 뛰어 다녔지요.
마침 내가 근무하던 11p는 52연대와 접경이었지요.
52연대 근무자를 만나러 가는 길은 참으로 험했습니다.
7~80도 되는 경사면을 따라 올라야 했습니다. 아마 지금 4500 계단의 산넘어가 아닌가 생각 됩니다.
11p막사 앞에서
막사 뒤 언덕에서
영원 할것 같던 전방의 겨울도 서서히 물러 갑니다.
지금도 잊지못할 아름다운 광경은 5월 8일 어버이날 에 내린 하얀 눈이었습니다.
진달래위에 살포시 쌓인 눈을 보고 참 아름답다 느끼며 카아네이션을 연상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느 날인가 소대 대청소의 날입니다.
내무반을 다 비우고 청소를 합니다.
그날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광경을 또하나 목격합니다.
어느 선임병의 지시에 따라 모포를 털고 한장씩 펼쳐 놉니다. 그리고 그 위에 이약을 뿌립니다.
그리고 또 한장, 그리고 또 이약 ---- 이렇게 쌓아갑니다.
아! 그렇게 쌓아놓고 한참 지나니 흰 개미 같은 것들이 모포에서 빠져 나와 줄행랑을 칩니다.
하도 신기해서 한참을 구경? 했습니다.
그날 난 그 선임 병이 참으로 거룩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11p 에서의 생활이 익숙해 질 무렵 여름이 시작 되던 어느날
중대 본부로 부터 명령을 받습니다.
다블백 싸들고 중대로 내려 오랍니다. 영문은 모릅니다.
중대본부에 도착하니 전에 없던 막사형 탠트가 본부 마당에 설치되어 있고
중대장의 안내로 나는 그곳으로 불려 갑니다.
소령 계급장이 반짝거리는 군복을 잘 다려 입은 사람에게 나는 인계되었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철미동 대전차 장애물 공사 현장" 이란 현황판이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더군요.
자대 배치 받을때 썻던 신상메모에 건설회사 현장 근무 경력을 참고한 듯 합니다.
나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계기로 인해 그로서 그 소령을 상사로 모시고 그곳에서 근무를 시작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