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또 다시 전방 투입

초의거사 2016. 1. 9. 12:40

글 번호 270번에서 이어짐

 

호기롭게 기억속에 남아 있는 추억록을 꺼내 들고 34개월 군 생활을 적어 나가기 시작 했는데

그런데 점 점 어려워집니다.

연무대 중학교 교정에 임시로 마련된 집결지에 들어서던 순간부터

전방 11P 올라 어려운 생활을 하던 졸병 시절들은 조교, 동료, 고참 들의 한마디 한마디 말투까지

기억이 날 정도인데 상병되고 생활이 여유로워진 후반의 생활은 기억의 저 깊은 창고 속에 꼭꼭 감추어져 쉽게 꺼내어 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말년때 같은 공간에서 생활했던 중대장, 그리고 인사계의 성함도 잘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그 전의 중대장 2명(김명수님, 김용주님.) 인사계 1(이소삼님)명은 다 생각이 나는데 ---- 야속합니다.

아마 고생스러웠던 추억이 오래오래 머릿속에 각인 되어 남아 있나 봅니다.

 

우리는 상주중대에서의 헐렁한 생활을 마감하고 1977년 2월 1년 만에 다시 전방에 투입됩니다.

자대 배치 받자 마자 후덜덜 거리는 두다리를 의식하며 다시는 못올길을 가는듯 바짝 얼어어서 걷고걷고

밤새 걸어 오르던 전방을 인수 인계를 위해 선발대로 올라 갔지요.

이번에는 1P, 2P, 3P 쪽 (펀치볼 쪽)으로 올라갑니다.

인사계, 서무병, 보급병, 병기병, 통신병, 그리고 각 소대 선임하사, 기지계, 이렇게 선발대를 꾸려

본대 보다 앞서 올라갔습니다.

상주중대 에서 1P 까지 거리도 만만치 않지요.

인사계의 배려?로 우리는 펀치볼까지 버스를 이용했습니다.

검문소 앞에서 내려 걸어 올라갔습니다.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요?

불과 1년전 혹독히 경험했으면서도 전방 추위를 가볍게 생각 했나봅니다.

눈길을 따라 오르는 길은 경험해 보지 않은 추위였습니다.

중간 6~7부 능선쯤 가다가 인사계가 한쪽으로 안내 합니다.

그곳에는 1개 소대가 머물렀다는 벙커가 텅 빈채로 우리를 맞이 합니다.

인사계 설명으론

휴전 직후에는 남방 한계선이 협정대로 휴전선 2Km 후방을 준수 하느라 그곳 산 허리에 있었답니다.

그곳이 그때 GOP 소초 였답니다

그러다가 그 벙커에 공비가 침투하여 수류탄으로 1게 소대를 전멸 시켰답니다.

이 후 적의 동태를 관찰하기 쉬운 지금의 고지 능선으로 철책을 밀어 올렸다합니다.

그곳에서 잠시 인사계의 무용담을 경청? 하고 칼바람을 피하며 휴식을 취하고 이동했습니다.

미리 들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중대 본부에 도착한 우리들은 기막힌 현실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중대본부가 벙커였지요. 침실과 행정반이 같이 들어 있는 벙커입니다.

대낮에도 호롱불을 밝혀야 업무가 가능한 ----

인사계 말로는 옛날 철책선 안에 있던 GP 초소였답니다.

철책선(남방한계선)이 능선을 따라 밀어 올려 지는 바람에 졸지에 철책선 밖 초소가 되어버렸답니다.

실제로 우리가 근무 하던 당시 205 GP가 철책 밖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

그래도 각 소초는 전부 막사 건물이었는데 중대 본부만 ----

인수 인계를 받는 동안 우리는 펀치볼 출입 경험담까지 잊지 않고 인수 받습니다.

어쨌거나 나의 34개월 군 생활 중 말년 7개월의 군생활은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뒤쪽에서 시작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