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풍요속에 잊혀진 지난 날

초의거사 2018. 1. 10. 09:17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아침

명절 음식 쇼핑 차림으로 현관을 나서던 울 마눌님께서 한마디

"ㅇㅇㅇ 할아버지! 세탁기 다 돌면 빨레좀 털어 널어."

(마눌님의 나에 대한 호칭이 언젠가 부터 ㅇㅇ 아빠에서 ㅇㅇㅇ 할아버지로 바뀌었다)

"어 알았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인터넷 여행에 빠져 있는데

"띠웅 띠웅 --"

세탁기가 제 할일 다했다고 신호를 보내온다.

나는 본능적으로  세탁기의 신호에 반응 한다. 후일의 안녕을 위해 ---

하나 하나 세탁물을 털어 널던 중

내 바지 뒷 주머니가 묵직하니 둥글 둥글 함을 느끼고 뒷 주머니를 열어보니

아 ! 그곳엔 언제 넣어 두었는지 기억조차 없는 현금 뭉치?가 나온다.

대충 반바지 주머니에 구겨 넣고 일을 마치고 거실에 와 펴보니

자그만치 현금이 일만 하고도 구천원

난 까맣게 모르고 있던 현금뭉치?

저 많은 돈이 내 지갑에 있지 않고 빨래통 속에 방치 되어있어도 모르고 지내 왔다.

내가 언제 부터 저 많은 돈을 개의치 않고 살아 왔던가?

생각사로 세상의 변화 무쌍함이 놀라웠다.


우리 아들 고 3때

"아빠 다른 과목은 다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데 수학은 영 모자라서 수능 전에 얼마간이라도 학원에 등록 했으면 좋겠어요"

"응 그래 한달 수강료가 얼마나 되니?"

"일주일에 4시간, 한달에 20,000원 정도면 될것 같아요"

온갖 지혜를 모으고 주판을 두드리고 겨우 6개월 수강을 끊어 줬었다.

그 귀한 한달 수강료나 되는 돈이 뒷 주머니에서 썩어도 몰랐다.

( 물론 그때 20,000원 하고 지금 20,000원 하고는 다르지만 --)

반성하며 그 돈을 다리미로 다려 고이 모셔 두었다.

삼겹살 1인분 15,000원, 소주 한병 4,000원

저 돈, 쇠주 한잔에 시름을 달래기도 모자라는 돈이 되었지만

저 돈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만큼 내가 풍요를 누리고 살 형편이 되었나? 자책감이 들고 -

아이고 ---

이런때 왜 엊그제 다녀온 고향 부모님 산소앞의 코스모스가 그리운지 모르겠다.


명절 연휴가 열흘이나 된다고 세상이 술렁 술렁 하는데

내 마음은 무 덤덤

이 연휴가 지나면 찬바람이 불겠구나 하는 공허함만 더 해진다.

그냥 좋은일에도 공허 해지고 나뿐일에도 공허 해지고 -

가만 있어도 공허 해지고 무얼 해도 공허 해지고 -

무념 무상으로 산천을 주유 하면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려나?

무념 무상이 되려나?

이번 연휴엔 무념 무상을 흉내내어 세상이나 한 바퀴 돌아 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