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글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초의거사 2018. 1. 11. 13:45

올 겨울들어 최고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날 오후

낯익은 동네 골목길을 걸어 갑니다.

목적지는 금천문화원

목도리를 칭칭 두르고 잠바 카라를 높이 세우고 종종종

갑자기 길옆 미장원 문이 열리고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봅니다.

빨간색 패딩을 입은 단아한 헤어스타일의 중년여인이 나오며

나와 눈이 마주칩니다.

아주 잠간 머뭇 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약간 돌려

침을 탁 밷고 나를 힐끗보더니 들어 갑니다.

전혀 마음의 준비도 대비도 없는 상태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어이없고 황당하고

그 여자 입에서 방금나온 김이 나는 하얀 액체를 보니

나도 모르게 화가 머리 끝에 맴돕니다.

참 기분 * 같았습니다.

왠지 그 여자 한테 아주 호되게 추행 당한 기분이었지요.

길바닥에 나뒹구는 죄없는 패트병에 발길질을 해봅니다.

"쳐먹었으면 잘 버려야지 함부로 버리고 **이야"

누군지 모를 패트병 버린사람 한테 속으로 욕을 해댔습니다.


한참을 씩씩 대며 걷다보니 추운 날씨 때문인지

머리끝에서 맴돌던 화가 내려앉시작 합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여자는 잘못이 없어 보입니다.

미장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알수 없는 이유로 입에 침이 고였을 것이고

그걸 미장원 안에서 밷기는 환경적으로 어려워

그걸 밷기 위해 밖으로 나왔을 것이고

날이 추우니 빨리 해결 하고 들어 갔을 것 같았습니다.

내가 그 시간에 그 앞을 지나가지 않았으면

지나가더라도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으면

그런 속상한 그림을 보지 않았을텐데

결국 속상했던 그 일은 내 탓같았습니다.

이름 모를 그 여자 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속으로 쌍욕을 했었거든요)


내 나이 젊었을때 똑같은 일을 겪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 그 깟일쯤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쳤을 겁니다.

이렇게 오래 마음속에 담아 두지 않았을 겁니다.

나이들면서 자꾸 마음이 편협해지고

쓸데 없는 편견들이 자꾸 마음을 어지럽히고

그런 마음들이 자꾸 밖으로 튀어 나옵니다.

오늘  KBS 아침마당에 법륜스님이 나와 강의를 하셨는데

제목이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였습니다.

봄꽃은 떨어지면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쓰레기지만

잘 물든 단풍은 떨어지면 고이 주워 책갈피에 끼운답니다.

인생에 있어 청춘은 세월이 지나면 퇴색 하지만

사람들은

잘 물든 노년은 그 연륜을 그 경륜을 간직하고 후세에 남깁니다.

그러나

이미 온갖 세속의 찌든때에 절은 내가

편협해진 마음 - 그리고 편견들로 마음이 어지럽혀진 내가

잘 물든 단풍이 되리란 희망은 욕심일테지요

아니 아무리 몸부림쳐 봐도 무망한 일 일겁니다.

잘 물든 단풍이 되어 보려는 몸부림도 이미 세속에서 얻은 욕심일 테니까요.


하루해 중 석양이 제일 아름답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