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길의 나에게 술이란?
젊었을땐 그래도
술자리에 명분이 있었다
ㅇ ㅇ ㅇ 회
ㅇ ㅇ ㅇ 위원회
ㅇ ㅇ ㅇ 이사회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여러 형태의 모임
그런데 이젠 그런 명분들이 다 희미해지고
그냥 술이 그리워 술자리가 그리워
해질녁을 술 시 라 정해놓고
술시를 명분 삼아 마시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이젠 어느 정도 중독 증세 까지 겹쳐
이틀 사흘 그냥 넘기기가 인내라는 말이 필요할 정도로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잠은 안오고 인터넷 세상을 주유 하다 발견한
딱 내맘에 공감이 가는 한수의 詩가 나를 위로 해 준다
소주한병이 공짜
임희구
딱 금주를 결심하고 나섯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이
감자탕 드시면 소주 한병이 공짜란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삶이 이렇게 난감해도 되는 것인가
날은 또 왜 이리 꾸물 거리는가
막 피어나는 싹수를
이렇게 싹둑 베어내도 되는 것인가
짧은 순간 만감이 교차한다
술을 끊으면 술과 함께 덩달아
끊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 한둘이 어디 그냥 한둘인가
세상에 술을 공짜로 준다는데
모질게 끊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있는가
불혹의 뚝심이 이리도 무거워서야
나는 얕고 얕아서 금방 무너질 것이란 걸
저 감자탕집이, 이 세상이,
훤히 뀌뚫게 보여 줘야 한다
가자 호락 호락 하게
살다 보면 정말 정말
소주 한병이 내가 사는 세상일때가 있다
그 누구도 그걸 대신 해줄 그 무엇도
나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술을 끊자니
어디 끊을게 한두 가지 이던가?
난 자신이 없다
술로 인해 힘들고 어려운 새로운 업을 쌓고 가더라도
이미 쌓아온 업을 끊을 자신이 없다
혹자는 말한다
의사가 죽는다고 하면 술 끊는다고
난 생각해 본다
그때 나는 이미 죽은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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