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정은 첫번째 부터 쇼핑 이다
가이드의 말이 우리 한의의 원류가 중의라나 어쨌다나 하면서
중국에서도 유명한 중의원 으로 안내 한단다
40여분 달려 버스가 들어가는 곳은 북경대 의과대 정문이었다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북경대가 어느 대학인가?
우리로 말하면 서울대 격 이고 국제적인 인지도면에서는
서울대를 앞지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나로서는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지금까지 쇼핑 이라면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아 왔었는데--
그런데 --- 그런데 ---
대학 정문으로 들어간 버스는 캠퍼스를 한바퀴 돌더니
또 다른길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느낌이 들 정도에서 멈췄다
기대보다는 약간 작은 건물로 안내하는데
모자란 한자 실력으로 문앞에 붙어 있는 여러 간판및 현판을
독해 하여 보았지만 북경대와 연관 되어 있는 글귀는 어느곳에도 없었다
먼저 큰 간판은 "대붕관"(大朋館) 이라 되어있었고
양 옆 기둥에 작은 현판이 붙어 있는데
왼쪽에는 "중국 여유인협회"(中國 旅遊人協會)
우리말로 하자면 여행사 협회 쯤 될것 같다
오른쪽에는 영문으로 "Beijing science academy"(베이징 사이언스 아카데미)
"북경 과학 교육원???"
도무지 중의원과 연관이 되질 않는다
어쨌던 일행은 30여분 중의학 강의를 듣고
희망하는 사람들은 간단히 진맥을 보고 나왔다
약을 산 사람은 없었다
그곳을 출발해 도착한 곳은 북경시내에서 약 15km 외곽에 있는 "이화원" 이었다
이화원은 청조 황실 정원으로 그 넓이가 무려 90여만평(여의도89만평)이란다
그중 70 여만평이 호수인데 인공으로 조성한 인공호수 였다
그옆에는 북경에서는 보기 드문 산이 있는데
호수를 파서 생긴 흙으로 쌓인 산이란다
사방을 둘러봐도 한눈에 들어 오지 않을 정도의 넓은 정원과 호수,
수를 헤아릴수 없을 만큼 많은 전각들 ---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좋은?,나쁜?) 일화를 남긴
여자 권력자 서태후가 주로 여름 별장으로 사용던 곳인데
본래의 정원을 부당한 권력을 이용 북태평양 해군 전비를 전용하여
지금의 호화롭고 거대한 규모로 중건 했단다
상상을 초월하는 토목 공사를 삽과 괭이 지게 등 으로 조성했을 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의 호화 방탕한 만행은 결국 청국의 몰락을 자초하는데 일조를 했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점심 메뉴는 중국식 정통 만두 "교자연"이었다
다섯가지의 만두 정식인데 쌀밥이 나왔다
한국사람이 오면 메뉴와 관계없이 꼭 밥은 나온단다
점심 식사 후 중국 여행의 마지막 쇼핑인 실크단지에 들러
우리는 처음으로 쇼핑을 했다
실크 이불이 우리것보다 싸고 좋다는 실속파 우리 여자분들의 판단에 의해서다
40여분 이동 6월의 태양이 여과없이 쏟아지는 천안문 광장에 도착했다
우선 그 크기에 압도 당한다 끝없이 펼쳐진 광장
100만명의 군중이 한번에 모일 수 있다니 어마어마하다
정면에는 지금도 모택동 시신이 유리관안에 안치된 모택동 기념관
왼쪽에는 국립 박물관, 오른쪽에는 인민 의사당이 있다
천안문은 원래 우리의 광화문과 같은 궁전 정문이다
나는 문 좌우에 근대에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엄청난 크기의 주석단? 이 눈에 띄었다
과거 공산 혁명시절 많은 공산당 간부가 그곳에 자리했을 것이고
천안문 중앙 문루에는 모택동이 앉아
광장에 모인 백만 군중 및 인민해방군을 호령했을 것이다
천안문을 통해 자금성으로 들어 간다
들어 가면서 좌우 둘러 보며 우리의 광화문을 생각하니 자존심이 상한다
자금성을 관광하는 내내 그런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도무지 궁궐이 왜 이렇게 크고 넓어야 되는지--
"이사람들 이렇게 사치하니 이 넓은 땅에서 500년 왕조가 없지?"
스스로 평가 절하 하며 심통을 달랬다
전체 70만평 가운데 일반에 공개된 것은 50% 정도란다
방의 갯 수가 999개라나
왕자가 태어나 한방에서 10일씩 기거한다고 가정하면
그나이 27세 되는 해에 궁궐에 있는 방을 다 살아 본다나 어쩐다나
지금 정궁인 태화전과 정궁 문인 태화문은 올림픽을 대비 공사 중이었다
자금성 건축 양식 중 특이한 것은 기둥이나 문들이 모두 현대의 콘크리트 제품같다
모두 하나같이 매끈 매끈하고 기둥은 정 원통이다
나무 표면에 황토를 바르고 마르면 다듬고 하기를 수십차례
그리고 붉은 도료로 마무리를 하는 공법으로
제일큰 목적은 화재 예방을 위해서란다
육안으로 보거나 만져 보아서는 그속에 나무가 있으리라 짐작도 안간다
천안문, 오문을 지나면 이다리가 나오고 다리는 태화문으로 연결된다
이다리가 다섯개 인것 처럼 모든 문은 다섯개의 통로가 있다
제일 가운데 문은 오로지 황제만 다닐 수있고 황후도 처음 혼례식때 딱 한번 지나간단다
서태후가 모든것 다 할 수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가운데 다리로 출입 못한것을
평생 한으로 여기고 살았다고 한다. 서태후는 천민 후궁 출신이다
2시간여 자금성 관람후
후문 근처에서 전혀 생각치 못한 구경을 하게 된다
(위 사진) 분명 잎은 소나무 인데 줄기는 하얗다
우리나라의 은사시 나무와 똑같았다
자금성을 나와 외곽을 보니 성 주위에
폭 50m 규모의 해자(외부 침입을 막기위한 인공 강)가
70만평 전체 성을 에워 싸고 있었고
그 해자 뒤로 높이 10m의 성곽이 버티고 있었다
어느것 하나 보통 상식을 뛰어 넘지 않는게 없다
자금성 뒤로 커다란 황실 정원이 있는 산이 있는데
그 산도 해자를 팔때 생긴 흙으로 이루어 졌단다
그 공역에 얼마나 많은 힘없는 백성들의 피가 배어 있을까
자금성 관람을 마치고 해자 옆 시원한 도로 공원 벤취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반갑고 눈익은 모습들이 눈앞에 수없이 오갔다
현대자동차 마크가 선명한 택시들이 어쩌다 한대가 아니라
그 앞 도로를 달리는 택시 중 거의 70~80 % 는 현대 마크가 달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차 뒤 왼쪽에는 한문으로 "북경현대"
오른쪽에는 영문으로 "엘란트라"라고 표기 되어 있었다
현대 자동차 북경 공장에서 출고된 차였다
택시회사는 올림픽 이전에 현대 자동차로 80% 이상
의무적으로 교체 하라는 당국의 지침이 내려 졌단다
가슴 뿌듯 했다
자금성에서 구겨진 자존심이 조금은 회복된 기분이었다
(호텔?주차장에 주차된 최신형 엘란트라)
귀국을 위해 북경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40분
드디어 인천행 비행기는 8시 20분에 이륙했다
우리말을 하는 우리 비행기 승무원들은 너무 예쁘고 상냥했다
집에 온듯 마음이 포근하다
우리의 서해상 날씨도 너무나 쾌청해
10,200m 상공에서도 산동 반도가 손짖을 하는듯 내려다 보였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우리의 야경은
북경의 그 것과 너무나 판이 했다
휘황한 인천공항의 야경은 4박 5일 동안
어두침침한 중국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감동이었다
우리 시각으로 8시 50분 비행기가 착륙하고
수속 완료하고
화물을 찾기 위해 나왔는데
그새 화물이 나와 빙글빙글 돌며 주인을 찾고 있다
중국에서라면 30분~ 1시간여 기다려야 나오는 화물인데 ---
9시 40분 우리 동네에 오는 버스를 타고
10시 45분에 시흥고개에 내림으로 길고 긴 4박 5일 의
중국 여행이 무사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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