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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보리밥

초의거사 2024. 7. 29. 11:14

옛말에 "삼복 더위 손님은 호환마마 보다 무섭다"

라는 말이 있듯이 요새 더위는

손님은 커녕 일상 마져 귀찮게 합니다

삼시 세끼 먹는 것 조차도 귀찮아 질때가 많습니다

 

어제 저녁도 둘이 먹는 끼니에

서로 암묵적인 합의 하에 대충 먹고 치웠는데

먹다 남은 밥 한덩이를 방치 했나 봅니다

아침에 밥솥을 열어 보던 마늘님이 비명 비슷한 소리를 내서 보니

남겨진 밥에서 요새는 맏아 보지 못했던 악취가 납니다

마눌님은 이 밥의 처리에 익숙지 않은 듯 당황하다

비닐봉지 담아 둘둘말고 음식물 봉투에 담아

바삐 밖으로 나갑니다

 

사람이 심란한 일들을 겪으며 살다보면

마음이 감성적으로 흘러

옛 추억을 회상하게 되나봅니다

그것도 밝고 화려한 추억 보다는 어둡고 아팠던 추억을 회상하게 됩니다

황망히 쉰 밥을 들고 나가는 마눌님 뒷 모습에서

그 옛날 쉰 보리밥을 처분? 하시던 우리 엄니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엄니는 쉰 보리밥을 찬물에 여러번 헹구셨습니다

그리고는 대나무 채반에 걸러 놓으셨다가

생열무 손으로 뚝뚝 잘라 넣으시고 고추장에 쓱쓱비벼 잡수셨습니다

그리고 쉬지 않은 보리밥은 우리에게 퍼 주셨지요

그렇게 쉰 보리밥 마져 버리지 못하던 시절

어쩌다 공동 우물 수채구에서 버려진 하얀 쌀낱이라도 발견되면

동네 뉴스거리가 되고

누구네 집 가마솥에서 누룽지 긁는 소리도

동네 뉴스거리가 되던 어렵던 시절

정신 건강에도 육신의 건강에도 전혀 도움이 안될 걸

알면서도

그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하며 혼자 가슴아파 합니다

 

80년대 후반 

혜성처럼 나타난 육상 영웅 임춘애씨가

집안 형편이 어려워 라면 먹고 훈련 했다는 뉴스가 온 매스컴을 도배 할때

당시 어린이들이 부모세대들의 굶고 살았다는 푸념에 대한 대답이

"왜 굶어 ? 쌀 없으면 라면 먹으면 되지" 였습니다.

2024년

지금 내 손주 애들은

부모 세대들의 돈 없어서 가고 싶은 학원도 못갔다 푸념 하면

"왜? 돈없으면 카드쓰면 되지" 라고 한답니다

세태는 끊임없이 변합니다

도덕관념도, 경제관념도, 사회적관념도, 개인적인 가치관도,

눈이 돌 지경의 빠른 변화에

70년 동안 고집스럽게 놓지 못하는 나의 관념과 가치관은

저 쉰 보리밥 처분의 예 처럼 지금은 전혀 융통 되지 않을 

폐기 되어야 할 늙은 사고 고집일 뿐입니다

그런데 쉽게 놓질 못하고 끙끙 앓고있습니다

 

이젠 변화에 적응 하려 애쓰지 않으려 합니다.

아니 애써봐야 마음만 다치고 얻는게 없습니다

폐기 되어야 할 사고이고 고집일지라도 고요히 정갈하게 안고 

하늘 여행의 티켓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올지 모르지만

그날을 위해 다듬고 다듬어 남겨놓고 갈겁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마음으로

기억해 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