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 마지막 일요일은 저희 집안의 합동 시향제를 올리는 날입니다. 원래는 매년 음력 10월 3일 조상님들의 각 묘전에 나가 제수를 진설하고 제를 올렸는데 절대 농경 사회였던 우리 고향에도 산업화의 바람을 타고 젊은 사람들이 외지로 빠져 나가고 어른들이 농경을 전담하기 시작 하면서 추수철의 일손이 부족해지고 따라서 시제를 준비할 인력 마져 미치지 못해 사당을 건립하고 비교적 농한기인 이른 봄에 합동으로 시제를 올리게 되었지요 각설하고 시재일이 다가오면 저는 서울 집에서 부터 해마다 하던대로 지방을(사당제이기에) 준비 하고 축문을 준비하고 ------
까마득한 옛 날 나의 어린시절의 시제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먹을 거리가 절대 부족 하던 시절 내가 아는 년 중 최대 행사는 단연 시제였습니다. 이삼일 전 부터 온 집안이 술렁 거렸지요. 남자분들은 장을 봐오고 땔거리(나무)를 준비하고 여자분들은 온갖 제수를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애들이 제일 많이 꼬이는 곳은 전 부치는 화덕 옆이었지요. 그곳에 진을 치고 있다보면 원숭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확율 보다 더 적은 엄니들의 실수로 전이 부서지는 불상사가 발생합니다. (나중에 커서 생각하니 다분히 의도적인 면도 -- ) 그러면 그 전은 옆에서 그 순간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던 애들 앞으로 던져 지지요. 사자가 먹다가 물러난 먹이에 몰려드는 하이에나떼를 연상시키는 쟁탈전이 벌어집니다.(과장인가?) 낯에 들에 나가 일하시던 남자분들이 제수를 목기에 괴(?)는 밤에는 어쩌다 두껍게 벗겨지는 배 껍데기 어쩌다 두껍게 떨어지는 밤 껍데기 주워 먹다가 운이 좋으면 떡 부스러기 한 움큼 전 부스러기 한 움큼 얻어먹을 수 있기도 했습니다. 시제 당일에는 아침 일찍 부터 출정합니다. 그 날의 백미는 식혜 쟁탈전입니다. 오로지 그 때를 기다리며 아무 뜻도 모르는 시제 마당에서 어른들 하시는 대로 절도 하고 부복하여 축문도 감상하고 나는 그때 축문을 거의 외웠던것 같습니다. (오늘날 내가 지방이며 축문이며 관심을 가지고 쓰고 읽고 할 수 있는 것도 그때의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확히 제 올리는 절차를 숙지 하고 있다가 마지막 절을 마치시면 시차를 두고 있다가 (어른들(헌관)들의 음복례가 있을때) 식혜쪽으로 달려 갑니다. 물론 처음부터 오른쪽 가장자리 식혜와 가까운 곳을 차지하기 위한 눈치 싸움도 있답니다. 지금이야 애들이 먹는다면 무엇이든 다 주지만 그 때는 식혜 외엔 어림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각자 집으로 들고 갈 음식(몫)을 배분 해 놓고 제발 가져 가라해도 몰래 도망치다 시피 그냥들 가지만 그땐 서로 한 끄덩이라도 더 못 가져 가서 안달 이었지요.
올해도 고향 형수님들의 성화로 억지로 각자의 몫을 만들고 억지로 각자의 손에 쥐어져서 각자의 생활터로 헤어집니다. 그 음식들이 온전히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 옛날처럼 귀히 대접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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