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소대 졸병 중대본부 행정병 되다

초의거사 2016. 1. 9. 12:26

1975년 9월 초

나는 중대장의 호출을 받고 영문 모른체 중대 본부로 내려 옵니다.

당시 중대 본부는 207 GP 통문 지근거리 언덕에 있었습니다.

중대 본부 위 더 높은 언덕에 군단 직할 SRP 초소가 있었지요

거기에는 군견이 있었고 군마도 있었습니다.

대북 심리전용 방송 장비가 있었습니다.

우리 근무때는 7,4 남북 공동 성명이 발표된 뒤라서 서로에 대한 비방 방송은 없었습니다.

가끔 스피커를 남쪽으로 돌린채 하는 시험 방송만 있었습니다.

커다란 구조물에 24개의 스피커를 장착한 모습의 그것은 기억에 360도 회전이 가능 했던것 같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구경거리를 옆에 두고 있는 중대본부 였습니다.

처음으로 겪는 중대본부의 생활은 졸병으로서 군 생활의 새로운 시작 이었습니다.

나보다 1기수 늦은 전령이 있었지만 중대장 비서(딱가리)였으니 고참들도 함부로 못하는 존재였고

실질적으로 내가 제일 졸병이었던 셈이었습니다.

직책은 서무계 조수

업무 배우는 시간보다 7~8명의 고참들 뒤치닥 거리 하는 시간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차라리 몸은 고되어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그래서 어느 정도 자유로웠던 소대 생활이 그리웠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겨울이 시작 될 무렵 예비사단 출신의 2.4 종계 조수가 들어옵니다.

입대일을 맞추어 보니 나와 동기쯤 되는 졸병 이었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 그런데 이사람  주특기가 나를 기죽게 합니다.

나는 100 인데 이사람은 어엿한 보급 주특기(?) 였지요. 어찌나 재던지 ---

어쨌거나 그 뒤로 졸병의 임무를 나누어 하게 됩니다.

(그 이름은 강수길, 지금이라도 이글을 보고 연락이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중대 본부도 역시 보급되는 경유로는 겨울을 날 수가 없었습니다.

화목이 필요 했습니다.

 

 

강수길과 화목 준비하며 그래도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왔던것 같습니다.

적은 병력의 중대 본부 병력으로 제설 작업에 무척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중대 차트를 독점? 했던 나는 중대장의 지시로 이런 표지판도써서 부대 입구에 세웠습니다.

서무계 업무가 어느 정도 익을 무렵 서무계 사수가 전역을 합니다.

그때 전방에서는 서무계가 일종을 같이 취급했습니다.

식량, 그리고 연료(경유), 담배(드롭프스)

사수와 내가 재고를 확인 하고 인수 인계를 하고 장부를 점검하고 서로 서명을 주고 받고 ---

그런데 사수가 전역하고 내가 모든 업무를 시작 하고 나서 문제가 터집니다.

중대 인사계와 다시 인수인계 장부를 들고 재고 조사를 하는데

식량과 연료는 맞는데 담배에서 당시 졸병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숫자가 모자랍니다.

환장할 노릇입니다. 분명히 정확히 주고 받았는데--

당시 인사계는 40대 중반의 경상도 사나이였습니다.

당장 서류판이 내 머리위에 떨어집니다.

"조남혁이 - 오떻할거야! 오떻게 이런 인수인계를 받나? 이시키야!"

"책임질 수 있어?, 영창 한번 가봐야 정신차리겠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며칠을 들 볶던 인사계가 하루는 은밀한 목소리로 제안을 합니다.

"조남혁이 - 휴가보내주면 해결 할 수있어-?"

그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고참들의 귀띰이 있기 전 까지는 --

나는 휴가를 거절했고 대신 지금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편지를 집에 보냈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 대신 일찍이 군 생활을 겪으신 형님께서 답장을 해오셨습니다.

요지는 "이해 할 수 없다. 군에서 생긴일은 군에서 해결해라" 였습니다.

당시는 형님이 무척이나 야속 했습니다.

그뒤로 나는 서무계의 끝발?을 활용해서 전 중대원을 상대로 담배 피우지 않는 병사들을 회유해서

담배를 채워 나가기 시작 했고 예비대로 철수 하기 전까지 완전 해결 했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말해도 될것 같아 글로 옮겨봅니다.

당시 인사계님이 이글을 보신다면 누군지 짐작 이나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한번 뵙고 싶습니다.

 

서무계 업무를 보면서 당시 어려웠던 기억은

휴가병들이 사회에 나와 헌병들한테 "군풍기 위반" 으로 적발 되어 오는 예 였습니다.

군인들의 풍기 문란을 엄격하게 단속하던 시기여서

휴가병들의 복장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이 헌병들에게 적발되면 바로 중대로 통지가 옵니다.

중대장은 통지를 받으면 즉시 사단 영창 일주일에 처하고 결과를 보고 하게 하였습니다.

전국의 곳곳에서 적발 통지가 왔습니다.

문제는 조서를 써야 하는데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육하원칙에 의거 작성을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잘써도 연대 인사과에서 퇴짜를 놉니다.

몇번을 중대장 한테 깨지며 수정을 합니다. 나중에는 특별한 내용 수정이 없는데 받아줍니다.

상급 부대의횡포 였지요.

그렇게 적응하며 중대본부 서무계로서의 위치를 굳히며 겨울을 보내고

그 겨울이 끝나기전 1976년 2월, 1년여의 전방 생활을 마치고 예비대로 철수를 합니다

지금은 폐쇠되어 폐허로 변한 다릿골 대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