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번호 270번에서 이어집니다.
전에도 한번 말씀 드렸습니다.
이 글은 순전히 저 개인의 기억 속에 있는 70년대 군생활을
더 늦어 다 잊기전에 추억 삼아 그냥 글로 옮겨보는 겁니다.
당시에 그곳에서 근무 했던 많은 전우님들의 군 생활과는 다른 점도 많을 것이라 생각되고
또는 저의 기억에 다소 시간적으로 오류가 있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 됩니다.
그저 소주 한잔 앞에 놓고 옛날일 안주 삼아 하는 넉두리 정도로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8.18 도끼 만행 사건의 긴장이 채 풀리기전, 한 여름 뜨거운 햇빛이 막 기울기 시작 하는 9월,
우리 중대는 이른바 상주중대라는 그 곳으로 이동을 합니다.
서화에서 펀치볼 가는 중간 고지에 자리한 상주중대
1개 대대 중 1개 중대가 교대로 전진 기지에 올라 근무 하는 부대입니다.
그곳의 부대 풍경은 어느 건설현장 사무소와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터널형 창고 막사에는 온갖 공사 자재들이 쌓여 있고 막사 주위 여기 저기에도
각종 철조망과 지주대 같은 자재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전방 철책 공사 또는 보수 공사 자재들 이었습니다.
상주 중대에서의 군 생활은 그동안 겪었던 어느 곳의 생활보다 여유 있고 한가로웠습니다.
주 임무는 전방과 후방 사이의 가교 역활?
3개의 검문소 운영 그리고 대공 초소 운영 그리고 진지 투입 훈련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검문소 : #RG1, 펀치볼입구, #RG3, 강촌?검문소, #RG4, 중대앞 고개,
한가한 시간에 밀린 세탁
전투 편성표 수정
왼쪽부터 : 이재영, 정갑진(장기하사), 나, 윤대주.
상주중대에서의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M16이 보급 되면서 그동안 훈련용으로 지급되었으나
부대 사정상 사용하지 못한 M1소총의 실탄을 탄피화 하는 일 이었습니다.
중대 병기계의 협조? 요청을 거절 하지 못한 우리 중대본부 행정병들은
웬만한 전쟁터에서나 있을 법한 실탄 사격을 3일 정도(업무 중간 중간) 교대로 했던 것 같습니다.
소총을 2~3정 옆에 놓고 쏘고 또 쏘고 총열이 열받아 덥게가 탈 지경이면 소총을 바꾸고 또 쏘고
처음에는 어떤 목표물을 향해 조준 사격을 했으나 나중에는 그냥 총구 전방으로 사격이었습니다.
병기계는 열심히 탄피 줍고 확인하고 -------
M16 소총이 새로 지금 되던날
처음 손에 쥔 M16의 느낌은 참 가볍다 였습니다.
그리고 장난감 총 같다 였습니다. 실탄도 총도 --
영점 사격, 그리고 실거리 전투 사격, 참 잘 맞았습니다. 신통하리 만치
처음 부터 M16을 사용하였다면 그 신통함을 못 느꼈을 테지만
어제 까지 M1 사격을 하다 오늘 M16 사격을 하니 그 차이를 체감 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아마 그 체험은 당시에 군생활한 병사들 말고는 누구도 영원히 느낄수 없을 것 입니다.
그리고 바로 대대 ATT 훈련에 참가 합니다.
훈련 출발 전
훈련 끝나고 귀대 했을때(옆에 보이는 건물이 #RG4 검문소 초소)
그곳에서 나는 나의 업무를 보조하고 이어받을 조수를 들이게 됩니다.
그 이름 문흥식(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지낼까 많이 궁금하고 보고 싶습니다.)
업무를 보조해 주는 조수가 있고 보니 나의 생활은 더욱 한가해 졌습니다.
나는 지난 여름 전방에 있을때부터 중대 차트를 거의 혼자 하다 시피 했습니다.
여기서는 전혀 다른 생각지 못한 곳에 나의 손이 미치기 시작 했습니다.
당시 펀치볼 입구 부터 지금 다릿골 대대 까지의 도로를 우리 중대가 관리하고 있었는데
중대장이 그 도로 중간 중간에 있는 교통 표지판? (합판에 표기해서 말뚝으로 심어놓았었습니다)을
전부 깨끗하게 다시 써서 세우랍니다.
매일 기존에 있던 표지판과 동일한 크기의 표지판을 제작하고 페인트와 붓을 들고 생활했습니다.
그 수를 지금 기억 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많이 상당히 여러 날 그일에 몰두 했었습니다.
그래도 어쩌다 연대에 공용 나갈 때 차타고 가면서 내가 세운 표지판을 보면
뭔가 모를 뿌듯함이 어깨를 들썩이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직선화 되고 깍아 내리고 완전 포장도로가 되어 옛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이 되어 버렸더군요
우리 중대는 그곳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다음해 2월 다시 전방에 투입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21사와 경계를 둔 펀치볼 뒤 1P, 2P, 205GP, 3P, 이었습니다.
저의 마지막 군생활이 그곳에서 화려 하게? 펼쳐집니다.
그곳 펀치볼과의 아름다운 인연이 있었던곳 다음이야기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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