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떠나 이곳(서울,시흥동)에 정착 한지도 어언 33년
사람들이 말하는 제2의 고향입니다.
친목 모임 중 기장 오래된 모임의 송년회가
지난 일요일 오후에 있었지요.
평소에는 남자들 끼리 모이다가
년말때만 부부 동반 모입니다.
그날
나보다 3살 쯤 어린 회원의 부인이 평소와 다르게
행동거지가 좀 과장 된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곁눈질로 보게 됩니다.
지난 가을 친정 어머님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지 않았을 터입니다.
자초지종을 집에 와서 같이 있던 집사람에게 듣습니다.
평소 친정에 가보면 돈 아까워서 보일러도 꺼놓고
냉골에 엉덩이 하나 붙일 만한 전기 장판으로 사셨는데
그렇게 사시지 말라고 말리고 말렸건만 그렇게 사시다
결국 암으로 세상을 떠나 셨답니다.
일억여원의 현금을 남기고 -----
어머님 사 후에
그 일억원의 돈 때문에 형제간 원수나 다름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답니다.
울더랍니다.
어머님이 원망 스럽고 불쌍해서--
나는 이미 친목회원인 사위를 통해서 자초 지종을 듣고 알고 있었습니다.
지난 가을 장모님이 돌아가시고
(우리 친목회에서도 문상을 다녀왔습니다.)
모든 형제들이 모여
고향에 장인 어른 산소에 합장 하여 모시기로 하고
큰처남이 산소일을 하러 먼저 내려 갔답니다.
그런데 고향에 갔던 큰 처남이 갑자기 올라와
형제들이 고향 떠난지 오래되어 고향의 인심이 좋지 않다는
섞연치 않은 이유로
두분 다 화장해서 서울 근교 추모공원에 모시자고 하더랍니다.
고향집도 다 정리 하고 왔으니 걱정 말라 하면서--
개운치 않은 마음들 이었지만 장남의 적극적인 밀어부치기에
모두들 그리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하고 장례를 치루고 있던 중
고향에서 온 문상객 중 농협에 다니는 분이 와서
장모님의 통장 예기를 하더랍니다.
일억원이 넘는 잔고가 있다고 ---
큰 처남이 집안 정리 중 통장을 먼저 발견하고
혼자 꿀꺽 할려고
사망 신고 전 농협 직원들과 공모(?) 하여 인출했던 겁니다.
그리고 다른 형제들이 알까봐 고향에 가지 못하게 한겁니다
장례식장이 난리가 나고 발인이 하루 연기 되는
초유의 사태 까지 발생 했답니다.
2남 3녀의 자식들 간에 원수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렸답니다.
그 일억원이 없었다면 사이좋고 화목 했을 형제들이었을텐데
그 장모님은 왜 냉골에서 사시면서 그 돈을 모아 남기셨을 까요?
유산 : 좋은 것일까요?
유산 : 나뿐 것일까요?
저 지난 주
우리 큰 처제(한 점순)가 벌써 환갑이라고
밥이나 한끼 먹자고 부여로 초대했습니다.
8남매가 다 모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식당이 꽉 차는 듯해 왠만한 잔치 손님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분위기 상 좀 과음을 했습니다.
왠만큼 시간을 보내고 바람도 쐬일 겸 밖으로 나왔습니다
겨울인데도 바람이 차지 않아
부소산 아래 백마강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네째 동서가 옆에 앉더니
형님 우리 처가는 큰 부자는 없어도 애들까지 다들 화목 하고 좋아요.
에이! 큰 처남만 건강 하게 살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
합니다.
조금 생각뒤에 농담 삼아
이 사람아 다 장인 장모님 잘 둔 탓인 줄 알아
우리 장인 장모님이 유산을 한 몇억쯤 남겨 놓고 가셨으면
지금처럼 다들 화목 할까?
그건 그래요 형님
자식들 한테 유산 남겨 줄 것 없어요.
죽는 날 까지 다 쓰고 남으면 기부를하던가 없애 버려야 애들이 싸움을 안해요.
하! 이사람 좋은 말이네 세상 사람들이 다 말하는 ---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어?
말은 맞는 말인데 누구도 쉽게 못하는게 또 그것이지 않나?
이땅의 나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전기세 가스비 수도세 아끼며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푼이라도 남겨 자식들 줄려고---
저희들끼리 싸우거나 말거나
그래야 마음이 편하거든요.
그게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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