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글

60 넘어 객지에서의 명절

초의거사 2016. 2. 21. 14:40

이젠

명절때 고향길에 올라 부대끼던 기억이

가물 가물 합니다.

그래도 고향에 형님이 계실땐

여기서 차례 모시고 당일 아침 출발하여

다음날 새벽에 오는 강행군도 마다 하지 않았는데 --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그런 어려움을 감내하려 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애들도 다 제짝을 만나 살림을 나가고

두 내외만 있는 객지에서의 명절은 참 쓸쓸 합니다.

전날 그래도 며느리가 와서 전도 지지고 청소도 돕고

집안에 온기가 돌다가

저녁엔 또 저희들 집으로 가 버립니다.

명절 당일 아침에 온다고 ---

마눌님은 하루종일의 결과물들을 정리 하고

나는 혼자 그 결과물들을 안주 삼아 소주를 홀짝 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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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없는 노년은 소용 없이 새벽 일찍 일어나

할일 없이 혼자 차례상을 챙깁니다.

그 시간에 한참 잠이 필요한 젊은 애들이 올리 없지요.

 

(사진을 보니 사과와 배의 위치가 평소 때와 다르게 바뀌었습니다, 실수)

 

그러니 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시간은 자연 길어지고

마눌님은 안절 부절

몰래 아들한테 전화로 독촉 하는 눈치입니다.

내 기준으로는 너무 늦게

아들 기준으로는 너무 일찍

차례를 모시고 세배를 받고 아침을 먹고

애들은 또 누나와 저녁때 만나기로 했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

다정하게 팔장끼고? 나갑니다.

또 둘만 남았지요.

허리가 뻑적지끈 할때 까지 TV 리모컨 들고 누워서 뒹굴다

아침에 남은 불은 떡국 데워 대충 점심 때우고 또 ---

저녁때 딸이 오고 외손녀가 오고 아들 내외가 들어오고

집안에 화기가 돕니다.

그렇게 나에게 명절 다운 명절은

채 4시간이 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또 둘만 남았지요.

더 큰 문제는 다음 날 또 다음 날

달력의 붉은 글씨가 원망 스러웠습니다.

결국 마지막 날은 견디지못하고

동네 주친들을 앞장서 모아 코가 삐뚤어 지도록 ---

집에 오니 집안 공기가 따뜻하지 못합니다.

아차

마눌님은 그나마 둘도 아닌 홀로 그 시간들을 견디었던 것이었습니다.

난 그날 저녁

차례상에 올랐던 북어포를 뜯고

과일을 깍아

작은 상에 올리고

냉장고의 맥주를 따들고

마눌님의 하해와 같은 마음을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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